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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헌 목록 〉18. 18世 〉29. <태사공>균헌공휘의석포천장(筠軒公諱義錫褒薦狀)
1. 문헌 목록 〉19. 19世 〉1. <요재공>농암공휘세겸행장(聾庵公諱世謙行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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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태사공>금산초부휘돈석유사(金山樵夫諱墩錫遺事)
<태사공후>금산초부휘돈석유사(金山樵夫諱墩錫遺事) 公諱墩錫字伯仁號金山樵夫又云訓齋姓貫玉川玉川即淳昌舊號也生于 正宗庚子十一月二十日卒己亥十二月十一日遠祖諱璵在麗朝官至太師侍中平章事歷數世通顯曾祖光修祖諱亨晋以壽爵 赠通政大夫僉知中樞府事考諱尚爀 贈朝奉大夫通德郎公之天禀剛毅才過衆人所學雖不數年文藝筆法於世無比而聲似洪鍾眼如流星力能超海獨抱經世之志故日誦三略時習弓刀則意氣凛凛人皆敬畏不敢犯顏歲當壬申亂起嘉山朝野騷勤公與韓原君子李周臣慎齊裔崔正弼謀士朱必大奮義仗刀號泣誓衆衆至數百餘而無不服其忠愛輔國矣時公上奉老慈金氏曰吾今朝幕之年有汝獨子而己則先人享祀在汝一身而况兵死地也送汝于兵場吾何生焉古語曰求忠臣於孝子之門不可以忠傷孝也固止之公慰其慈母護軍數日平亂關子來到于鄉邑則惜乎公之為國忠節世莫知之者胡不慨嘆战公嘗遊京城洪承相奭周之門欲以先祖康津公立懂建白褒赠洪閣曰以如 許之忠義至今泯滅無聞則世無公道即當啟 聞俾蒙賜額云云見遞未果而卒悲運耶只傳于后裔者將二柄 금산초부휘돈석유사(金山樵夫諱墩錫遺事) 공의 휘는 돈석(燉錫)이요 자는 백인(伯仁)이며 호는 금산초부 또는 훈재(訓齋)고 순창조씨였다. 一八○四(正宗甲子)년 十一월 二十일에 출생하여 기해(己亥)년 十二월 十一일에 졸하였다. 원조 휘 여(璵)는 려조(麗朝) 태사시중평장사요 여러대를 이어 현 달하였고 증조 휘는 광수(光修)요 조휘 형진(亨晋)은 수직으로 증통정대부 첨지중추부사며 고휘 상혁(尙爀)은 증조봉대부 통덕랑이었다. 공의 천성이 굳세고 재주가 초탈하여 공부한지 수년에 문예와 필법이 세상에 짝할자 없었으며 소리가 큰 종소리 같고 눈이 샛별 같으며 힘이 능히 바다를 뛰어 넘을만하여 홀로 세상을 다스릴 뜻을 품은 고로 병서를 외우고 때로 활과 칼을 익히며 의기가 늠름한고로 사람이 다 두려워하여 감히 범접지 못하였다. 임신(壬申)년에 가산(嘉山) 난리가 일어나 조야(朝野)가 소동이니 공이 한원군(韓原君) 아들 이주신(李周臣) 신재(愼齋) 후손 최정필(崔正弼) 모사 주필대(朱必大)로 더불어 의리를 뽐내 칼을 잡고 울부짖어 여러 사람에게 맹세하니 같은 소리로써 응하여 모여든자 수百인이 그 층군애국(忠君愛國)을 감복하였다. 그때에 공의 모부인 김씨가 가로되 내가 이제 늙어 아침 저녁을 근심하는 처지로 후사가 너 한사람뿐인즉 선영 향화도 네 책임이요 또 전장은 사지라 너를 전장에 보내고 내가 어찌 살것인고 옛말에 충신을 효자의 문화에 구한다 하였으니 충성으로써 효도를 상한 것은 불가하니라 하고 굳이 막으니 공이 자친을 위로하고 호군(護軍)한지 수일에 평란이 되었으니 아깝도다. 공의 위국충절을 세상에 아는자 없으니 어찌 슬픈 탄식이 없겠는가. 공이 일찍 서울 홍상국석주(洪相國奭周) 문하에 놀며 선조장진공전사 사적을 조달하여 포양하고 증이를 받고져 하니 홍정승이 말하되 이와 같은 충절이 이제까지 햇빛을 보지 못한 것은 다 우리 실책이니 마땅히 계품하여 은전(恩典)을 받도록 진력하겠다 하더니 체직되어 이루지 못하고 졸하니 슬프다 운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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